프롤로그

그저 처음에는 단순히 건강도 찾고, 또 환갑 나이를 살아온 기념으로 내 삶에 보람된 족적(足跡) 하나 남기고 싶어 기획하고 시작한 도보였다.
그런데 천 몇 백리 길을 나의 두 다리로 완주한 순간,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고 짜릿한 감동의 전율(戰慄)이 온몸을 투과(透過)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 감동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나의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생각만 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자부심과 설정한 목표를 스스로 달성했다는 성취감은 이후 나의 삶에 큰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이든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빠르게 지나가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걷기는 우리가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그 깨달음은 속도의 시대에 한 가닥 휴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걷기는 뒤처짐의 개념이 아니라 치유(治癒)의 개념이다.
도보 여행은 한없이 걸으며 사색에 잠겨 보고 시련에도 과감히 맞닥뜨려 보는 고난의 여행이다. 그러나 걷는 동안 오롯이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고, 화해하고, 보듬는 치유의 여행이기도 하다.

(중략)

이번 16박 17일에 걸친 나의 환갑 기념 국토 종주 경험은 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어떤 역경도 극복하고 완주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아무튼 운동 겸 환갑을 맞는 기념으로 걸었던 ‘천리길 도보’에서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았다.
힘차게 내딛는 걸음 속에 비장(悲壯)한 각오로 무장해 머릿속에는 오직 목표를 달성해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차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인한 갈증과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고, 발바닥에 잡힌 물집도, 허리를 조여 오는 통증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체적 고통을 참고 견디며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포기(抛棄)한다면 미래의 삶에 닥칠 큰 시련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내가 선택한 길은 내가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인생길이든 도보 길이든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宿命) 아닌가. 이렇게 자신의 변화를 위한 도전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불태우면서 목표를 향해 고된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한층 더 성숙한 나인 ‘자아(自我)’와 만나게 된다.
나의 도보 여행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얼마나 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얼마나 더 인내하며 버틸 수 있는지, 내 의지력의 한계는 어디이고, 내 삶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고 또 내일도 걸을 것이다.
 
이번 도보 여행을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인생의 크나큰 희열(喜悅)을 느꼈고, 내게 주어진 피동적(被動的)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길을 걸으면서 무수한 시련을 겪게 된다. 마찬가지로 도보 여행의 길도 인생의 길처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육체적, 심리적 갈등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또 길을 오래 걸으면 걸을수록 갈등(葛藤)이 더 심해진다는 것도 알았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여행의 목표가 자신의 심리적 갈등을 걷기로 해소하고 치유하며 자신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삶의 좌표(座標)를 찾는 것임을 확신한다.
도보 여행의 참뜻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도보 여행이란 길을 따라 한없이 걸으며 자아(自我)를 찾기 위해 스스로 시련(試鍊)에 빠져보는 고난의 여행이다. 그리고 삶의 본질(本質)에 다가서기 위해 긴 사색(思索)에 젖어보는 외로운 여행’이라 정의(定義)하고 싶다.